생성형 AI가 코딩 도구를 빠르게 대체하면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일자리는 가장 위협받는 직군으로 꼽혀 왔다. 하지만 벤처캐피털 SignalFire의 최신 고용 데이터는 정반대의 그림을 보여준다. AI 시대에 엔지니어는 오히려 더 필요한 존재가 되고 있다.
지난 2년간 IT 업계를 관통한 가장 큰 공포는 'AI가 내 일자리를 대체하는 것'이었다. 생성형 AI의 발전 속도가 워낙 빨랐고, 특히 AI 코딩 도구(Copilot, Cursor, Claude 등)가 실제 개발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면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가장 먼저 대체될 직군 1순위로 꼽혔다.
실제로 지난 5월, 기술 기업의 정리해고는 최근 몇 년 사이 최고치를 기록했다. 아웃플레이스먼트 전문 기업 Challenger, Gray & Christmas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번 감원의 가장 큰 사유로 AI가 지목되었다. 많은 기업들이 "AI 덕분에 한 명의 엔지니어가 예전의 여러 명 몫을 할 수 있게 되었다"며 인력 구조조정에 나섰다.
해고 사유로 AI가 가장 자주 언급되지만, 현장의 채용 데이터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 Asher Bantock, SignalFire 리서치 총괄
하지만 벤처캐피털 SignalFire가 최근 발표한 'State of Talent Report'는 이러한 공포가 과장되었음을 시사한다. SignalFire는 8,000만 개 이상의 기업에 소속된 수백만 명의 직원 경력 데이터를 추적 분석했는데, 결과는 놀라웠다.
SignalFire의 분석 결과, 엔지니어링은 2025년 가장 회복력(resilient)이 뛰어난 직군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정리해고에 주목하는 대신, 실제 고용 시장의 흐름을 더 정확히 반영하는 신규 채용 데이터를 기준으로 삼았다.
대형 기술 기업(Alphabet, Meta, Apple, Amazon, Microsoft, Netflix, Nvidia, Tesla, Uber, Airbnb, Block, Stripe)의 전체 채용 규모는 2019년 대비 25% 감소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엔지니어링 직군의 채용 감소폭은 고작 11%에 그쳤다.
| 구분 | 2025년 데이터 | 2019년 대비 변화 |
|---|---|---|
| 대형 기술 기업 전체 채용 | — | 25% 감소 |
| 엔지니어 채용 (대형 기술 기업) | — | 11% 감소 |
| 엔지니어 비중 (Tech Majors 신규 채용) | 55% | 46% → 55% (상승) |
| 초기 스타트업 엔지니어 채용 | — | 7% 증가 |
더 주목할 점은 Tech Majors로 분류된 12개 기업의 신규 채용에서 엔지니어가 차지하는 비중이다. 2019년에는 46%였던 이 비율이 2025년에는 55%로 급증했다. 즉, 전체 채용 규모는 줄었지만 뽑히는 사람 중에서는 엔지니어 비율이 오히려 크게 늘어난 것이다.
초기 스타트업의 상황은 더욱 극명하다. 2025년 스타트업의 엔지니어 채용은 2019년 대비 오히려 7% 증가했다. SignalFire의 Asher Bantock 리서치 총괄은 "만약 AI가 정말로 엔지니어를 대체하고 있다면, 현재 기술 고용 시장의 위축 국면에서 엔지니어링 채용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흥미로운 점은 AI 업계 내부에서조차 'AI=일자리 대체'라는 전망에 회의적이라는 사실이다.
작년 앤스로픽(Anthropic)의 CEO Dario Amodei는 AI가 5년 내 사무직 일자리의 절반을 없애고 실업률을 20%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하지만 앤스로픽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Peter McCrory는 올 3월 TechCrunch와의 인터뷰에서 아직까지 AI로 인한 유의미한 고용 시장 변화를 목격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Claude를 업무의 핵심에 가장 많이 활용하는 직군(기술 문서 작성자, 데이터 입력 사무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과 AI에 덜 노출된 직군 사이에 실업률의 유의미한 차이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 Peter McCrory, Anthropic
더 강력한 반론은 엔비디아(Nvidia)의 CEO Jensen Huang에게서 나왔다. 그는 지난 4월 스탠포드 대학원 경영대학원과의 인터뷰에서 AI가 엔지니어를 대체할 것이라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Huang은 "누군가는 AI가 모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일자리를 파괴할 것이라고 말합니다"라며 "저는 정반대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단언했다. 실제로 엔비디아의 모든 엔지니어는 현재 에이전틱 AI(agentic AI)를 사용하고 있으며,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은 그 어느 때보다 바쁘다"고 그는 전했다. AI 에이전트가 코드를 거의 즉시 작성하지만, 그만큼 더 많은 '다음 아이디어'를 엔지니어에게 요구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 현상을 설명하는 경제학 개념이 있다. 바로 제본스 역설(Jevons paradox)이다. 19세기 영국의 경제학자 윌리엄 스탠리 제본스는 석탄 효율이 개선될수록 석탄 소비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증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효율이 높아지면 사용 비용이 낮아져 더 많은 곳에서 활용되기 때문이다.
AI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의 관계도 마찬가지라는 게 Bantock의 분석이다.
Bantock은 현재 엔지니어 인력의 상황에 대해 "갑자기 훨씬 생산성이 높아졌고, 그들에게는 끝없이 할 일이 있다"고 표현했다. AI가 단순 코딩 작업을 대체하면서 엔지니어는 더 창의적이고 복잡한 문제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오히려 넓어졌다는 것이다.
이 데이터가 IT 기획자나 서비스 기획자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첫째, AI는 '무엇을 만들지' 결정하는 역량의 가치를 높인다. AI가 코드 작성 속도를 높일수록, '무엇을 만들지'에 대한 기획과 의사결정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기획자는 엔지니어와 협업하여 우선순위를 정하고, 요구사항을 정의하며, 비즈니스 가치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역할이 확장될 수 있다.
둘째, AI 리터러시가 필수 역량이 되었다. AI 도구를 이해하고 직접 활용할 수 있는 기획자와 그렇지 않은 기획자의 생산성 격차는 점점 벌어질 것이다. AI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는지 파악하는 것 자체가 핵심 역량이 되는 시대다.
셋째, 인간의 판단력과 경험이 재평가받고 있다. 포드가 AI 품질 시스템의 한계를 깨닫고 베테랑 엔지니어를 다시 고용한 사례에서 보듯,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현장 경험과 직관, 맥락 이해 능력은 여전히 중요하다. 이는 IT 기획자에게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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